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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한 글/오마이뉴스

[주장] 윤도현과 이하나의 창조된 '좌익'

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제 51회 그래미 어워즈의 중요 부분 중에 하나인 남자 팝 보컬부분에서 나의 눈에 꽤 익숙한 사람이 시상자로 등장했다. 우리에겐 중국의 모택동 주석에게 헌정하는 곡인 'Chairman Mao'란 곡과, 역시 체 게바라의 혁명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Song for Che'라는 곡을 작곡했던 미국의 재즈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이었다.

그는 알다시피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성향덕분에 FBI의 감시를 받기도 했고 포르투갈에서 연주 도중 강제 출국을 당한적도 있는 '정치적 사상범'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미국을 대표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음악축제인 그래미 어워즈에 시상자로 당당하게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선배인 행크 존스의 업적을 얘기한 후, 그날의 수상자인 존 메이어의 이름을 멋지게 호명하고 퇴장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등장에 이념적 의구심을 품은 자가 외려 그 속에선 고독했을 만큼 축제는 즐겁고 음악은 흥겨웠다.

이는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얼마 전 이탈리아의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반니 미라바시'가 내한 공연을 가졌다. 국내에서도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이 연주자는 수많은 청중들이 모인 앞에서 공연의 첫곡으로 놀랍게도 솔로로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라는 곡을 연주했다.
이것을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다분히 불순한 제목이다. 아울러 이 곡의 배경은 사회주의 대통령 아옌데를 살해하고 집권을 한 칠레의 극우독재자 피노체트와 맞서 싸운 민중을 애도하는, 흔히 말하는 좌파들의 노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이 곡의 의도를 간파하여 언짢은 표정과 함께 연주도중 자리를 뜨는 우익성향의 관중은 한명도 없었으며, 또한 정부심의기구에서 나왔을법한 검은 양복이 튀어나와 연주를 제재하지도 않았다. 연주는 훌륭했고, 관객들은 감탄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미국 못지않게 문화와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수준 높은 문화국이다.

 

감지되고 있는 수상한 기류 

  
▲ 개편을 맞아 <페퍼민트>를 하차하는 이하나 그녀의 급작스런 MC선정과 급작스런 하차는, 결국 특정 뮤지션의 하차를 위한 중간단계 였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 스타엠
이하나

자. 그런데 여기 우리들 수준 높은 민주공화국에서 이상한 기류가 언젠가부터 감지된다. 믿을 수 없겠지만 몇몇 뮤지션들이나 방송인들이 자신의 노래에나 멘트에 의해 현재 활동에 제재를 받거나 심지어 퇴출까지 당한다는 소식이다. 그 때문에 뮤지션들을 비롯한 대중 문화인들은 이미 스스로 자기검열에 들어가고 있으며 그와 연계된 미디어들도 이미 그들의 편이 아니란다.  

실제로 YB는 이미 잡혀있던 스케줄이 KBS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줄줄이 취소되고 '이하나'라는 배우가 <페퍼민트>의 진행자로 급작스럽게 선택되었다가 역시 급작스럽게 퇴출된 것도 '윤도현'이라는 가수를 교체하기 위한 일련의 방패막이였다는 사실도 이번 개편을 통해 스스로 인정했다. 제발 '억측'이란 말은 하지 말아 달라. 우린 지금 '불온'이라는 이름이 달려있는 문화 콘텐츠들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앞선 짧은 두 뮤지션의 일련의 이야기가 나에게 한숨한번 들이쉬고 꽤나 많은 것을 고민하게끔 하는 이유는 언젠가부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퍼지고 있는 거대한 폭압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과 대중문화의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는 작금을 인내하거나 평소처럼 조소하며 쳐다만 보기엔 그들의 노골적인 압력의 강도는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YB는 과연 '이념'을 얘기했나? 

  
▲ 8집 <공존(共存)>으로 다가온 YB 그들이 얘기한 것은 '이념'이 아닌 '현실'이다
ⓒ 다음기획
YB

그럼 이쯤에서 짚어보자. 과연 지금 현 시점에서 철퇴를 맞고 있는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이 과연 앞서 얘기했던 찰리 헤이든이나 지오반니 미라바시의 예처럼 이념을 얘기하고 혁명을 찬양했던가. 물론 나는 음악을 비롯한 대중예술이 가지는 놀라운 전환의 힘과 확립의 힘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예에서 그것을 확대시킬 이유는 없다.

YB는 이번 8집 <공존(共存)>에서 88만원세대의 비극을 얘기했고 처참하게 죽어간 철거민의 아픔을 말했을 뿐이며, 그것은 눈앞에 '현실'이었고 발생한 '사건'이었다. 과거 그의 정치적 성향을 얘기하고 싶다면 그가 민주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우린 간섭하지 못한다. 이건 상식이기에 논의에 가치가 없다.

뮤지션이 음악을 통해 사회에 아픔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과격한 이념투쟁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면, 사회과학자들의 이론의 본질이 사상을 떠난 가치중립적이듯 뮤지션, 그들이 말하는 것도 다분히 보호받아야할 정당성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들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해야할 문광부는 이미 거대한 힘의 전달자에 지나지 않고 있으며, 외려 자발적인 감시자를 자처한지 오래다. 이념을 연주하는 저명한 해외연주자들은 인정하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슬픈 아픔을 얘기하는 자는 처벌한다? 누구 말마따나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는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자!

됐다. 이제 됐다. 이제 그만 솔직해 지자. 많은 방송인들과 대중예술인들이 방송국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고, 현재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자기검열에 이불안에서 어둠을 보는 이유의 본질은 '이념'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결국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 그리고 그 의사가 직접적이든 우회적이든 간에 일단 표명되었다고 타의에 의해 판단된 사람들에 대한 보복에 다름 아니다.

누구의 억측대로 YB신보에 실린 가사 중에 '깃발'이라는 어휘나 '시뻘건 거짓말'따위에서 불온한 이념이 포착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이유라면 그들은 최소한의 품위는 지켰을 것이라 나는 감히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 권력은 그 정도의 수준도 못된다.

따라서 자유를 얘기하고 존재를 말할 이 땅의 뮤지션들과 예술인들은 부디 꺾이지 말지어다. 과거 우리들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풀어헤침의 심지가 꼭 특정 테마만으로 한정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을 비롯한 문화의 진짜 가치는 창조자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만들고, 그것이 방법적으로 훌륭히 완성되어 수용자에게 온전히 전해졌을 때 극대화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그랬듯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자. 억압에 짓눌려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것이리라.

출처 : 체게바라 찬양은 돼도 윤도현은 안 되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