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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한 글/프레시안

[리뷰] 예능과 음악의 만남 <나는 가수다>, 독일까 약일까

 

1985년 2월 22일 뉴욕의 타운 홀에서는 당시 재즈 팬들에게 상당히 기념비적인 콘서트가 열렸다. 이야기는 모던재즈의 상징과 같았던 블루노트 레이블이 '록의 시대'로 정의되는 196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점차 사양길로 빠지던 그때에서 시작된다.

말 그대로 '정통'만을 고집하던 레이블의 수장 알프레드 라이언은 67년 결국 은퇴를 선언했고,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시스 울프마저도 곧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은 실제로 블루노트와 모던재즈의 종언을 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EMI가 블루노트를 흡수하며 레이블은 또 다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고, 그 새로운 출발을 알리려는 당시 브루스 룬드발과 마이클 쿠스쿠나의 아이디어는, 그 동안 블루노트를 거쳐 간 그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아 거대한 콘서트를 열자는 제안이었다.

▲ 'THE BLUE NOTE RE-ISSUE SERIES' 세실 테일러
그리고 매우 당연하게도 그 콘서트에는 모던재즈 팬들이 한 자리에 집결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 '주류'인 모던재즈를 접하기 위해서임이 분명했고,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그 목적에 충실하게 응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주류'만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세실 테일러와 같은 모던의 기법과는 동떨어진 전위적 피아니스트의 등장은 그곳에 모인 많은 재즈 팬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세실 테일러의 '재탄생'이었다. 콘서트가 진행됐던 8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포스트모던의 그것과 같이 오랫동안 음악을 해온 세실 테일러였지만, 잘 알려지지 못했던 자신의 음악을 주류의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선보인 그날은, 그에게나 혹은 재즈를 듣던 많은 이들에게도 분명한 '재탄생'의 날이었다.

'예능'을 통해서 '재탄생'되는 한국의 대중음악들

이처럼 '모던'을 통해 '포스트모던'이 전파되었듯이, 결국 음악은 소리 그 자체로 전달되지 않는다. 대중을 통해 음악이 전파되는 일종의 '방법'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러한 방법이 제대로 활용만 된다면 세실 테일러의 재즈도 이처럼 어느 순간 주류의 무대에서 힘을 뿜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나 MTV의 등장이후 이런 음악 매개의 중요성은 한층 더 복잡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파생되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몇 년간 음악시장이 특정 계층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잠재적 수요는 TV라는 상당히 오래된 매체를 통해 최근 폭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느 사이엔가 음악과는 동떨어진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웃음'을 찾기 위해 TV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음악'을 감상하는 청중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에게 일종의 '재탄생'의 기회를 마련하는 MBC <나는 가수다>의 성공은, <수요예술무대>나 <음악여행 라라라>, EBS <스페이스 공감>과 같은 전통적인 음악프로그램들이 낮은 시청률로 폐지되거나 공중파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론 <나는 가수다>의 경우 '서바이벌'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방송 의도와는 달리 가수들의 수명이 단축되어버리거나 재도전 논란과 같은 문제들이 또 다시 불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나 가요계에서 비주류라 여겨왔던 'YB'의 '록'이 청중의 귀를 휘어잡고 있는 모습이나, 눈물을 흘리며 한국대중음악을 흡수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나는 가수다>가 앞으로 <놀러와>의 '세시봉 열풍'이 그랬듯, 음악적 트렌드의 재탄생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충분히 예상 가능해진다.

▲ '세시봉 열풍'의 진원지는 콘서트홀이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MBC

아울러 MBC <라디오 스타>나 엠넷의 <디렉터스컷 2>와 같은 방송들은 '백두산'의 김도균과 '씨엔블루'의 정용화, 기타리스트 조정치, 하림, 윤종신과 아이돌 그룹 '신화'의 김동완, 혹은 '봄여름가을겨울'과 이승철의 조합과 같은, 값비싼 공연에서 조차 보기 힘든 다양한 조합들의 음악을 소개하며 한국대중음악간의 벽을 '예능'이라는 소재와 함께 조금씩 허물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시도는 예전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국카스텐'과 '에프엑스'의 협연처럼 종종 있어온 시도이기는 하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기억되고 전파되는 모습은 역시 '예능'의 옷을 입은 모습들이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이나 엠넷의 <슈퍼스타 K>역시 인간드라마와 함께 음악에 관한 진지한 자세와 학구적인 분석들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다시 불붙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고, 최근 '가왕' 조용필의 명곡들을 쉴 새 없이 흘려보내 주목을 받았던 프로그램은 전통 음악방송이 아닌, <1박 2일>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2년마다 가요제를 개최하는 <무한도전>의 경우에도 지난 번 4월 30일 방송을 통해 올해 가칭 '탄탄대로 가요제'를 알리는 전야제를 방영하며 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정재형, 이적, 스윗소로우, 싸이, 10센치, 바다, 권지용과 같이 얼핏 봐도 다양한 장르에서 포섭된 뮤지션들은, 단순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웃음만을 위해 모였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화려한 진영이다. 한국의 음원시장에 힘을 불어넣는 힘이, 오랜만에 싱글을 발표하는 유명 뮤지션이 아니라 한 예능프로그램의 기획이라는 것은 이제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 <나는 가수다> @MBC

'예능'과 '대중음악'의 상생은 가능할까

이처럼 지금 한국대중음악은 예능프로그램에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합은 사실 음악 '산업성'의 시류와 닮아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방향성 자체가 나중에 독이 될지, 혹은 약이 될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는 분명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과연 예능프로그램을 위시한 미디어와 한국대중음악의 상생은 가능할 것인가. 워낙 협소한 한국대중음악시장에서 예능을 통한 음악의 전파는 분명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예능프로그램은 결국 또 다른 대중들의 판단, 즉 '시청률'에 메여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선 곤란하다. 알다시피 이 시청률이라는 방송국의 절대적인 지표는, 상생은 고사하고 프로그램과 뮤지션들의 동반하락의 전조가 될 가능성을 만드는 '폭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이러한 시류가 가진 결정적인 한계점이다.

특히 이는 방송국보다 가수들에게 치명적이 될 가능성이 큰데, 미디어를 이용할 것인가, 혹은 이용당할 것인가의 싸움으로 가면 과거 미국의 뉴메틀 밴드들이 그러했듯, 가수들은 분명 불리한 위치에 서있음이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6월에 방송될, 아이돌 그룹멤버들이 출연해 명곡을 재해석해 부른다는 KBS <불후의 명곡 2>를 지켜보는 마음도 딱히 편치 못해진다.

결국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를 타파하거나 보완하는 최대의 해결책은 '대중들의 지속적인 지지'로 귀결된다. 가장 이상적인 상생의 모습이란 이러한 예능프로그램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대중 각자가 스스로의 음악적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라 한다면, 제작진 역시 시청자들이 가지는 음악적 관심이 프로그램을 벗어난 음악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과연 가능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미디어나 가수들보다 대중문화에 있어 가장 큰 권력자로 군림하는 대중들, 그것도 그동안 한국대중음악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만 앞세웠던 그들이 힘을 써야할 보이지 않는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