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엔블루(CNBLUE)'라는 밴드가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등장했을 때, 나는 그들을 알리는 문구 어디선가 '인디밴드'라는 글귀를 읽었다. 그들은 이웃일본에서 라이브 공연만 100여 차례, 게다가 몇 장의 싱글을 제작하여 현지에서 발매까지 한 실력파 밴드라는 문구였다.
물론 '인디음악'에 대한 정의는 음악적 태도나 유통방식, 그리고 장르적 특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인디밴드=실력파 밴드'란 조금은 오래된 공식이 마케팅 차원에서 적용된 듯싶었다. 거기다 홍대도 아닌 시부야라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역량이 꽃피어진 곳은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연주했다던 일본의 시부야가 아닌, 홍대가 있는 한국이었다. 아울러 그 꽃이 피어나는 한국에서의 파괴력은 일본에서의 인디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어서, 그들을 메이저와 상반되는 의미의 인디밴드라 부르기가 상당히 민망해지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역시 그들에게서 스타성을 본 기획사의 눈은 정확했고, 또한 씨엔블루 역시 그 훤칠한 외모 만큼이나 스타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는 훌륭한 밴드였던 것이다.
표절시비와 법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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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다시피 그들은 얼마가지 않아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국내 인디밴드인 '와이낫(Ynot?)'의 디지털 싱글인 <그린애플>에 수록된 '파랑새'와 씨엔블루의 '외톨이야'의 유사성이 대중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아울러 그 부분에 대해 FNC뮤직 측은 공식입장을 통해 표절논란에 이의를 제기한 와이낫 측에 '노이즈 마케팅', '언론 플레이'와 같은 꽤 자극적인 단어로 강한 유감을 표했으며, 이것으로 이 두 집단의 갈등은 표면화됐다.
이후에 FNC뮤직 측에서 특별한 추가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현재 이 문제는 와이낫 측이 지난 1일 보도 자료를 통해 FNC와 작곡자인 김도훈, 이상호에게 별도의 내용증명을 보내고 이들에게 특별한 답변이나 조치가 없을 경우 모든 적법 절차를 밟겠다고 천명한 것에 이르렀다. 그리고 말미에는 와이낫과 인디씬 전체를 자극할만한 소속사 대표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으며, 많은 인디음악 팬들 역시 그들의 주장에 동조했다.
표절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표절에 대한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상당히 미미하고, 게다가 이 두 집단의 자본과 환경의 차이는 매우 현격하다는 것을 전제하면 와이낫측의 이러한 대응은 의외로 상당히 강경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둘의 갈등의 원인은 이전에 수 없이 있었던, 단순한 표절논란에서 찾을 일만은 아니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표절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디음악을 규정하는 데에 있어 각자의 시각차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본질에 가깝다고 본다.
인디음악에 대한 시각차 그리고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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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표절논쟁이 처음 시작했을 때 FNC뮤직 측에서 말한 "와이낫이란 그룹도 '파랑새'란 노래도 이번 일로 처음 알게 됐기에 그 노래를 참조했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는 발언이나, "와이낫이란 그룹은 난생 처음 들어봤다. 우리가 2008년 음악까지 다 찾아 들었을 리도 없거니와 만약 표절을 하려 했다면 외국의 더 좋은 곡을 했을 것" 이라고 말한 부분은 인디음악을 바라보는 거대 기획사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좋은(?) 표현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을 가진 기획사가 보는 인디음악이란, 거대자본에 종속되지 못한, 즉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바깥으로서의 음악이요 인디다. 따라서 조금 끔찍한 상상이긴 하지만, 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10년이 넘는 활동에도 불구하고 메이저에 편입하지 못한 와이낫이 이번 표절논란 건을 계기로 실제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그들로선 충분히 오해할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라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주류에 귀속되어있는 그들이 계층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논란 이후 그렇게 침묵만 지키고 있었는지도 또 모를 일이다.
물론 자본, 그리고 주류 바깥에서의 인디의 개념은 그 자체로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인디음악의 팬들과 뮤지션들은 바깥에 있기에 '자유'로서의 인디음악을 얘기한다. 종속되지 아니하는 자율적인 표현력. 그렇기에 스스로를 유통시키거나 기획하는 것이 가능하고 때로는 트렌드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예술 측면으로서만 인디음악을 바라보는 인디 순혈주의와는 구분되는, 인디음악의 현대적 의미이자 가치다. 그것을 무시하고 인디음악을 바라보면 이러한 현격한 시각차가 발생한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난하게 된다.
FNC뮤직 측에서 본 와이낫은 '씨엔블루라는 인기 그룹에 편승해서, 메이저로의 편입을 꿈꾸는 비주류 밴드'이고, FNC는 '인디의 음악적 자율성과 창조성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도덕성이 상실된 집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기에 이러한 시각차와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인디밴드라는 문구로 마케팅을 했던 씨엔블루, 즉 100여 차례나 일본에서 공연을 한 실력파 밴드라는 문구 이면에는, 국내와 해외에서 700여 차례나 공연한 와이낫과 같은 실력 있는 인디밴드 따위 알 리가 없다는 무지도 함께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들에게 씨엔블루의 인디경력이란, 메이저로 이어지는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자 통로라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사실 그렇지 않고서야 기획자나 인기 작곡자가 이토록 국내 인디음악에 관심이 없을 수도 없다.
아니면 이해했다 하더라도 누군가 얘기했듯 어차피 음악으로써 자본을 갈망하는 모습은 애초에 똑같지 않은가 하는 꽤 천박한 얘기로 대수롭지 않게 인디를 정의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고,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인디'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대중, 그리고 공존
결국 국내에서 인디음악에 대한 어긋난 시각차가 제대로 표면화 된 것이, 이번 표절논란과 관련한 법적공방의 또 다른 축이다. 물론 음악이란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자기 스스로 자생하는 힘을 가지는 놈이기에, '소리'의 범주에서 본다면 인디와 메이저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굉장히 무의미해 지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분쟁 사이엔 분명히 어떤 깊은 골이 존재했고, 아울러 그것을 따르는 대중들 역시 이러한 반목에 상당히 몰입되어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인디음악 팬들은 아이돌 음악을 듣는 그들을 천박하다 비난하고, 반대로 아이돌 음악을 즐겨듣는 팬들은 인디음악을 그들만의 음악이라 매도하는 모습은 그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씨엔블루의 곡이 표절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나, 올해로 예상되는 저작권위원회 내부에 표절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보다 조금 더 중요한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인디를 위한 나라. 그것은 종국엔 공존의 문제다. 그리고 단편적으로나마 그 답에 대한 희망은 와이낫이 지난 1월 23일 발표한 보도자료 가운데, "연주 실력과 작사 작곡 능력까지 갖춘, 그리고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 있는 후배들인 씨엔블루의 멤버들이 이번 논란을 통해 음악활동과 창작활동을 함에 있어 위축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라는 문장에서 조금 찾을 수도 있겠다. 공존이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출발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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