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연기가 새하얀 빙판위에서 조지 거쉰(George Gershwin)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와 함께 어울려서 펼쳐질 때, 순간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나는 봤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거쉰의 음악과 완벽한 하나가 되어 세상에 없는 연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이쯤 되면 김연아가 하는 피겨는 더 이상 스포츠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의 증거는 그녀의 연기와 아름다운 음악의 완전한 합일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처럼 귀에 들리는 음악과 눈에 보이는 영상이 완벽히 하나가 될 때, 우리는 뭐라 말하기 힘든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김연아가 증명한 것이다.
김연아, 그녀와 함께한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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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연아의 경기에서 그녀의 표현력을 완성했던 또 다른 축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2007~2008 시즌 쇼트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요한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이나, 역시 2008~2009 시즌 쇼트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2008~2009 시즌 프리 스케이팅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2악장, 렌토'와 같은 클래식 곡 외에도, 2007년 갈라에서 보여줬던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온'이나 2005~2006 시즌 쇼트에서 사용된 영화 물랑루즈의 '록산느의 탱고'와 같은 특별한 선곡도 그녀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특히 국내 대중들에게는 2006~2007 시즌, 프리 스케이팅에서 보여준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의 '종달새의 비상'이란 곡을 기점으로 그녀가 사용한 음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상품성을 캐치한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이 김연아가 경기에서 사용했던 음악들을 컴필레이션 형식으로 묶어 과거 <Fairy on the ICE>를 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음반은 음반시장 불황의 한가운데서도 발매 3개월 만에 5만장 이상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영화 '007'에 삽입된 연주곡들과 거쉰의 선곡도 여지없이 들어맞아 그녀가 최상의 표현을 어김없이 발휘하게 해주었다.
특히 프리 스케이팅에서 흘러나온 '피아노협주곡 바장조'를 만든 조지 거쉰의 경우, 얼마 전 지휘자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뉴욕 필을 이끌고 평양에 가서 연주했던 '랩소디 인 블루'의 작곡가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음악가가 되어버렸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런 의미에서 평양에서 울리던 지극히 미국적인 거쉰의 곡은 돌이켜보면 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음악가, '조지 거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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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유태계인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기 미국음악을 대표하는 거쉰은, 그러나 사실 김연아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와 같은 클래식 작곡의 영역 외에도 대중음악 작곡의 커리어가 훨씬 더 잘 알려진 음악인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혼합된 미국적 문화라는 개념을 꺼내들지 않으면 기존의 클래식적 음악 사관으로는 꽤나 설명이 애매해서, 그의 작품을 일컬어 재즈 오페라니 재즈 클래식이나 하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장르가 조금은 억지스럽게 붙기도 한다.
1920년대 미국의 틴 팬 앨리(Tin Pan Alley)의 작곡가들이 그랬듯 그의 음악세계도 브로드웨이에서 시원하게 울려대던 스탠더드 곡들을 통해 당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특히 그의 친형인 작사가 아이라 거쉰(Ira Gershwin)과 콤비를 이루어 조지 거쉰 그가 뇌종양으로 3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상당히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그리고 그 곡들은 많은 연주자들에게 스탠더드로 계속해서 재연되면서 사실 클래식 애호가들 보다는 재즈 애호가들에게 좀 더 친숙해진 음악가가 되어버린 감도 없지 않아있는데, 실제로 그는 당시 재즈나 블루스, 흑인 영가와 같은 미국 본연의 음악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표한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굳게 해주고 명성을 얻게 해준 작품들은 대체로 큰 작품들에서 비롯되었다.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이나 오페라 '포기와 베스', 그리고 김연아와 함께한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와 같은 곡들은 여타의 틴 팬 앨리 작곡가들과는 차별되는 그만의 고유한 음악성으로 존재한다. 특히 1935년 뉴욕에서 초연된 '포기와 베스'의 '섬머타임'이란 곡은 재즈 뮤지션들 뿐 아니라 여러 팝 음악가들에게도 후에 상당히 많이 리메이크 되면서, 그의 음악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곡이 되기도 했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와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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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사용했던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의 경우 뉴욕 에올리언 홀에서 '현대음악의 실험'이란 제목의 음악회에서 초연된 1924년 작 '랩소디 인 블루'에 영향을 받아, 후에 1925년에 만들어진 곡이다.
당시 뉴욕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월터 댐로쉬(Walter Damrosch)의 위촉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당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랩소디 인 블루'로 탄탄한 다진 그의 음악적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작품이다.
총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역시 그가 가진 '재즈적 감성'인데, 특히 이러한 느낌을 가득 담은 1악장 초반에 울리는 즉흥적 느낌의 피아노와 김연아의 부드럽고도 유려한 출발은 초반 부터 상당히 상쾌했다.
중간 김연아가 아름답게 스파이럴 시퀀스를 선보이던 때 경기장을 꽉 채운 거쉰 특유의 복합적인 음의 진행, 스핀을 돌때에 울리던 야성적인 피아노와 상승하는 금관과 현악의 음들은 마치 이 안무와 음악은 처음부터 합쳐져 있는 듯 펼쳐져 그 자체로 황홀함을 자아낸다. 또한 거쉰의 특유의 감성으로써 틀에 얽매이지 않고 들려주는 피아노 솔로의 변화무쌍한 곡의 반전은, 김연아가 보여주는 다양한 연기의 매력과 어울려 그 자체로 '예술'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4분 남짓한 그 시간동안 편곡된 음악에는 그렇게 클래식, 초기 재즈의 렉타임, 블루스라는 다양한 음악이 한데 모여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김연아의 놀랍도록 다양한 연기가 모여 있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007' 음악도 그랬지만, 프리에서 사용된 거쉰의 음악 역시 그 자체로 김연아를 위한 음악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가 사용했던 시종일관 진지하고 음울함을 점층적으로 쌓아가던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종'은, 김연아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일이 이쯤 되면 이제 훌륭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음악과 연기의 완벽한 합일은 당연히 '예술'이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이 예술의 장르가 아니라면 적어도 김연아가 하는 피겨는 그렇다. 아마 거쉰이 다시 부활해서 김연아가 연기하는 이 광경을 봤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 덕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를 들었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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