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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한 글/오마이뉴스

[리뷰] 추석 귀성길에 들을 음악, 나는 '윤종신'으로 정했다!


나의 올해 예비군 훈련이 드디어 9월 17일 부로 드디어 끝이 났다. 2차 보충은 대대에서 시킨다는 무시무시한 핸드폰 문자때문인지,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예비군들이 집결해 늘 그렇듯이 딱히 재미도 없고 감동도 별로 없는 훈련을 무사히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 '추석 잘 보내시고 돈들 많이 버시라'는 동대장님의 훈훈한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 예비군 5~6년차들은 자리를 박차 질풍과 같이 나가는 문을 향해 힘차게 돌진했다. 저런 힘을 훈련 때는 감추고 있었다니. 역시 한국의 예비군들은 그들의 진정한 힘을 국가차원의 안보를 위해 죽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훈련 때는 그렇게 처지던 몸이 끝난 다음에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력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근처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차가운 냉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입에 담배를 물어주는 거다. 딱 그 타이밍에는 천천히 이어폰을 귀에 꽂아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먼슬리 프로젝트(Monthly Project)'를 통해 매 월마다 새로운 싱글을 발표하고 있는 윤종신.
ⓒ 디초콜릿이앤티에프
윤종신

이윽고 내 머릿속에 퍼지는 음악들. 그럴 때는 으레 내 귀엔 '윤종신'의 음악이 흐른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일이었든 간에 힘들었던 무언가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를 감싸주는 노래로는 단연 윤종신의 노래가 최고라고 늘 생각해왔다. 그의 음악은 적어도 나에겐 무언가 '끝을 알리는 음악'인 것이다.

 

끝을 알리는 음악, 그리고 폼 안 나는 추억들

  
윤종신의 음악은 늘 그렇게 딱히 폼이 안나는 '추억'과 맞닿아 있다.
ⓒ 디초콜릿이앤티에프
윤종신

그의 음악은 늘 그래왔다. 과거부터 그의 음악은 언제나 그랬다. 새로운 시작이나 화려한 복수를 말하기 보다는, 끝난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고 또 위로한다. '쿨'하기보다는 '찌질'하게 그녀, 혹은 그를 놓아주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기엔 있다.

모든 것이 끝이 나고 터덜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바로 그때 귓가에 '다 그런 거야'라는 조금은 뻔한 위로를 노래하는 그의 특유의 멜로디와 가사는, 사실 내가 생각하는 '윤종신 음악'의 핵심이며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의 접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내게도 유난히 서글픈 추억이 많은데 그의 단짝인 장항준 감독의 <라이터를 켜라> O.S.T에 실린 '담배 한 모금'이라는 그의 노래는, 언젠가 순전히 내 실수 때문에 따르던 형이 상사에게 미친 듯이 깨졌을 때 건물 흡연 장소 구석탱이에서 나를 위로하던 곡이었으며, 11집 <동네 한 바퀴>에 실린 '야경'이란 곡은 새벽에 멀리 떠나려하는 그녀와 헤어지고 자갈치 시장 건물 뒤편 바닷가에서 나를 감싸준 곡이었던 것도 지금 퍼뜩 생각난다.     

또 대학 시절 남자친구 때문에 술을 먹고 진상을 부리며 괴로워하던 여자 후배에게 다음날 내가 슬쩍 건네준 음반이 그의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었던 것도 생각나고, 올해 마지막 예비군을 끝내고 들었던 음악도 다름 아닌 그와 유희열이 함께 부른 '어느 예비군의 편지'였던 것도 이제 빠질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이런 걸 보면 그의 음악은 참 폼 안 나고 처량한 상황에서 상당히 잘 들린다는 것을 느낀다. 어찌 보면 참 찌질한 추억에 그의 음악은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한국의 베리 메닐로우(Barry Manilow)라는 윤종신의 전략적 예능 파트너인 개그맨 김구라가 말한 품격 있는 그의 음악평은 여기서 좀 무너지지만, 그것이 그의 개성이며 스타일인 것이다. 아울러 이 지점에서 언제나 첨단을 지향하는 가수 이효리가 그가 작곡한 댄스음악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는 장난 섞인 그의 고백이 안타깝지만 이해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먼슬리 프로젝트(Monthly Project), 여전히 유효한 그의 감성

  
<먼슬리 프로젝트>, 일명 <월간 윤종신>의 빡빡한 일정에도 그의 음악성은 여전히 발휘된다.
ⓒ 디초콜릿이앤티에프
윤종신

어쨌거나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가 올해 3월 25일부터 꽤 거창하게 발표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이름하야 <먼슬리 프로젝트(Monthly Project)>. 일명 <월간 윤종신>.

뭔가 상당히 거창하면서도 또 프로젝트 네이밍이 너무 날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 그의 야심찬 이 기획은, 싱글의 형태로 올해 4월부터 매 월마다 신곡을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발표한다는 것이 취지이다.

현재까지는 9월 달 싱글인 <후회王>까지 발간됐으며, 종합적으로는 4월 달 싱글부터 현재 총 6장의 <월간 윤종신>이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단순히 발표된 신곡의 숫자로만 따지자면 6장의 싱글음반에 총 11곡의 신곡이 발표되어서 이 정도면 정규 음반 한 장을 이미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 아닌가하겠지만, 중간 중간에 편곡을 달리해서 음반에 추가한 곡들을 제외하면 신곡의 수는 아직 10곡이 채 안되기는 하다. 하지만 6개월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이 정도의 수의 신곡이면, 듣기 전에는 그 완성도가 의심될 정도로 왕성한 작곡활동이다. 

물론 나는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하여 윤종신의 음악적 능력은 그의 10집 <비하인드 더 스마일(Behind The Smile)>에 정점을 찍고 그곳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화했다고 비평한 적이 있으며, 그 음반에 실린 '몬스터'라는 처절한 곡의 감성은 '이별과 아픔 없이 안정된 삶을 즐기는 윤종신'을 통해서는 다시는 재연되지 못하지 않을까하며 우려 섞인 투정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의 <월간 윤종신>이 처음 시작할 때, 조금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종신이라는 훌륭한 뮤지션 자체에 기대를 저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외려 그 이후의 윤종신을 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월간 윤종신>을 통해 이러한 의심과 투정을 걷어내고 그의 재능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곡의 면면을 보자면 음악적 완성도는 예능활동을 비롯한 그의 빡빡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정체되지 않는 다양한 색깔의 곡들로 그의 감성을 실어낸다. 다분히 상업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냐는 일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 또 한 번 나를 부여잡는 것은 역시나 유효한 그만의 현실적이고도 세밀한 감정의 묘사, 그리고 여전히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접점' 탓이다.

  
<월간 윤종신>4월호 '그대 없이는 못 살아'
ⓒ 스타코아엔터
윤종신

아닌 게 아니라 <월간 윤종신> 4월 첫 번째 음반에 실린 '그대 없이는 못 살아'에서는 과거 처절한 이별대신 부부의 소소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그는 그 행복을 거창하게 꾸미지 않고 '늘어진 어깨'나 '지지리 못난 눈물'과 같은 가사에서 보듯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솔직하고도 세밀하게 전달한다.

과거처럼 안타까운 이별이 아닌,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랑을 노래할 때도 그는 이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뮤지션임을 그는 이 곡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얼마 전 1집 <미성년 연애사>를 발표한 조정치와 함께한 <월간 윤종신> 6월호에 실린 '치과에서'라는 곡에서는 충치와 사랑의 아픔을 믹스시키는 그만의 센스나, '푸드송'의 계보를 잇는 '막걸리나'에 등장하는 '아이보리 매직'과 같은 가사도 여전히 '윤종신'스럽다.

곡들은 대체적으로 그가 유일하게 잘 다룰 수 있는 악기라 말하기도 했던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 반주가 주를 이루면서 윤종신 특유의 편안한 멜로디가 정지찬의 세련된 편곡이 어울려져 들리는 곡들이 많아 딱히 거부감이 없다. 그 외에도 랩퍼 스윙스와 함께한 '본능적으로'나 일본의 여름음악 전문 밴드인 튜브(Tube)의 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해변의 추억(Day)'도 그의 팬이라면 꼭 한번쯤 들어봐야 할 괜찮은 곡들이다.

7월 달에 실린 'Funky Town'의 오마쥬이자 과거 뉴웨이브 댄스 음악인 '바래바래'는 좀 무리수라 생각되기도 하지만(그러나 이 곡을 들으면 과거 그의 화려했을 '클럽경력'이 예상되기도 한다), '해변의 추억(Night)'같은 곡은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이랑 밤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함께 들으리라 벼르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허전한 귀성길에 달래줄 나만의 응원가

  
그의 음악은 그렇게 힘겨운 무엇이 끝날 때, 조용히 귓가에 울리는 응원가를 닮아있다.
ⓒ 디초콜릿이앤티에프
윤종신

해마다 꽉꽉 막힌 도로위에서 견딜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는 음악이다. 그곳이 꼭 귀성길은 아니더라도 조용하고 어둑한 도로위에 차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외려 평소보다 더 깊숙하고 깨끗하게 흡수된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지금보다 차가 더 막혔으면 하는, 교통공사 직원들이 들으면 이상한 눈빛을 마구 쏘아댈 생각도 차안에서 가끔 하는 나다.

그리고 올해는 그 곳에서 윤종신의 음악을 들을 예정이다.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 그의 음악은 무언가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듣는 것이 정말 제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쯤 되면 균형을 잃은 노골적인 윤종신 찬양론자라고 욕할지도 모르나, 그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이번 추석에서 만큼은 '귀성길 한정'이니 오해는 마시라. 좀 지겹게 얘기했듯 그의 음악은 나에게 무언가 허전한 상황을 달래줄 편안한 응원가 같은 곡들이니까.


출처 : 추석 귀성길 나는 '윤종신'의 음악을 듣겠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