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교육 광고에 나왔다고 들었을 때, 그리고 그 특유의 표정으로 '특목고 980명 합격!!' 이라는 사진을 봤을 때, 솔직히 난 배신감을 느꼈다. 이유는 잘 모른다. 난 사실 그는 이념을 가진 학자가 아닌 말 그대로 '자유주의 아티스트' 라는 입장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사채광고에 나왔어도 '뭐, 신해철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하필 하고 많은 광고 중에 사교육 광고라니.
국회의원보단 창녀가 더 깨끗한 직업인 것처럼, 나도 사채광고가 사교육 광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바이기 때문에 그가 이러한 결단을 내린 건 일단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니 홈피에서도 장난스럽지만 '용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그동안 신해철을 티껍게 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의 말마따나 그 <H학원>이 그에게 한 1조원 줬는가 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신해철 몸값 엄청나게 비싼 거 난 잘 알고 있다. 그건 팬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그건 계량적 수치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만약 돈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가 왜 그랬을까? 도저히 감이 안 왔다. 협박받았나? 가정 생기시더니 진짜 맘 약해진 건가? 큰 사업 구상하시나? 퍼포먼스 일까? 이거 혹시 합성 아냐? <H학원>에 연고가 있으신가? 등등.
따라서 나는 해명 글 나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물론 사석에선 술 마시면서 좀 씹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신해철 좋아하는 거 다 아니까 장난스레 툭툭 건드리는데, 거기다가 정색하고 대거리하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같이 좀 씹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랄뿐이다.
물론 신해철은 그렇게 생각한 나를 포함한 몇몇 팬들을 'XX'로 매도하고 '너 나 아냐??' 라고 뼈아픈 독설을 날렸다. 슬펐다. 솔직히 슬펐다. 난 넥스트 앨범이라면 중학교 때부터 코 묻은 돈 모아서 꾸준히 구입했고, <FM 음악도시>에 이수용이 라디오에서 '드럼 연습하는 데에는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짱이에요' 하는 소리에 동네에 있는 전화번호부 다 끌어들여 방에서 뚜들기다 진짜로 부모님에게 뚜들겨 맞았던 기억도 있으며, 과거 SBS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마왕에게서 부여받은 '21호 원로원' 이라는 칭호가 지난 이십여 년 인생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칭호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남들이 이진경이니 강유원이니 하는 사람들 얘기할 때 당당히 난 신해철의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당연히 욕먹었지.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실실거리며 라디오 게시판에 '마왕~! 나 오늘 마왕 편들다가 욕먹었다?' 하는 실없는 사연도 끼적였던 그의 골수팬이었으니까.
과연 공교육의 대안은 사교육일까?
드디어 어제 해명 글이 나왔다. 사실 '해명'이라고 하기엔 읽어보면 좀 무리가 있다. 그가 직접 기사인용하려면 5번 글로 해달라고 했으니까 그가 적은 5번 글을 한번 보자.
공교육이 우수한 학생은 감당 못하고, 떨어지는 학생은 배려 못하니, 가려운 부분은 사교육이라도 동원해서 긁어주고 공교육은 자취를 감춘 인성 교육과 사회화의 서비스를 강화하는 게 현재의 차선책. 당신들과 소신이 다른 게 범죄야?
한 마디로 공교육이 거지같으니까 사교육으로 부족한 부분 메우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다는 말 같다. 물론 동의한다. 사실 이 부분은 반박할 말이 없다. 게다가 '소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면 사실 남들은 닥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음반 안사고 MP3 받아 처먹은 놈들이 입 닥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뭘까. 마치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손 안 씻고 나온 것 같은 이 기분은.
공교육 망가졌다. 맞다. 정말 그렇다. 근데 왜 정답이 '사교육'일까? 특히 그가 욕먹어 가며 광고한 <H학원> 거기가면 우리 애새끼 특목고 들어가고 공교육에서 못 메워주던 인성교육까지 더해서 인간 만들어 줄까? 거기가면 신해철같은 멋진 영국발음 가진 영어선생 있을까?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당장 보낸다. 빚을 내서라도 보낸다.
하지만 의심스럽다. 특목고 몇 명 보내는 것을 광고 전면에 자랑스레 빠방하게 박아놓고, 애들을 24시간 하루 종일 잡아놓고, 학원비에 목메어 지금도 죽어가는 학부모들의 늙은 얼굴과 가끔 새벽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윗집 고등학생들의 슬픈 얼굴을 생각하면 <H학원>을 위시한 사교육 학원들은 내가 볼 때 무슨 돈 들여서 애들 가두어 놓는 괴물 같아 보인다. 그리고 또 거기선 무너진 공교육에서 흔히 보는 문제점들 없을까? 거기선 비리 없을까? 거기선 탈세 없을까? 거기선 경쟁이 없을까? 거기선 체벌 없을까? ―물론 여기서의 '체벌'은 반드시 육체적인 체벌만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이 <H학원>을 위시한 대한민국 사교육에 대해 신해철이 광고에 한번 출연했다고 무한책임을 질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는 사교육시장의 대변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 광고가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했다. '상업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이 '난 돈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 광고에 출연한 게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돈 때문에 그랬으리라 믿는 사람들에게 'XX놈'이라고 까지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 층은 당연히 <H학원>을 어떠한 눈빛으로 봐야 될지 혼란이 온다. 설마하니, 진짜 이 <H학원>이 무너진 공교육을 한탄하며 설립된 비영리단체로서, 학원비를 받기 보다는 차상위계층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양질의 사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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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아니지만, '사교육'은 돈을 바라더라.
물론 이 모든 것의 본질적인 원인은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 사실을 말하자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놓은 공교육 관계자들이 욕을 더 처먹어야 한다. '신해철은 본인이 지금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면 학교는 때려치우고 학원만 다닌다' 라고 까지 했다. 지독한 공교육 불신이다. 이런 걸 보면 그의 광고 출연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나는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은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공부의 목적이 명문대 진학이라면, 비싼 사교육 받은 애들이 훨씬 유리하다. 돈을 들인 만큼 결과는 좋게 나온다. 5만원 들인 애보다 50만원 들인 애가 성적이 잘나오고, 50만원 들인 애보다 500만원 들인 애가 성적이 잘 나올 개연성이 높다. 간단한 산술적 계산이다.
하지만 학원비가 없는 아이들은? 요즘엔 뭐 학원도 시험치고 들어간다던데, 거기에 못 들어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맞춤형 교육? 뭘 맞춘다는 건가? 아이의 학습수준? 과목별 선행학습? 그렇다면 그 <H학원>에는 공부의 흥미 없는 애들 먹고살길 열어주는 '작업반'도 있나? 다시말해 사교육 시장은 떨어지는 애들을 배려해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경제적 사정까지 배려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사교육이 가지는 가장 큰 병폐이다.
이처럼 교육제도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앞서 말한 사교육비나 교육수준에 따른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가난과 부의 세습. 대안학교의 현실이나 아이들 특기적성의 선택권 등등을 파고들면 손석희씨 출동해서 끝장토론해도 답 안 나온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슬로건이 맘에 들어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지론과 맞아서 출연을 결심했다는 뉘앙스다. 정말?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이런 '그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청순한 미소년 광고 이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면광고에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출연계기이긴 하지만, 본인은 결코 돈 때문이 아니라 주장하고 철저한 조사 후에 ―물론 그 조사는 이 학원이 24시간 운영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조차 간과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 조사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광고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니, 아까 말한 것처럼 예상가능한 계기는 우리나라 공교육을 제대로 '까기' 위해서 이거나 사교육 시장 발전을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H학원>이 끝내주게 좋은 학원이라 출연했다고 밖에 나는 생각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일을 계기로 잠시 당황했던 것과, 그의 결정을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 경솔하게 봤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더 오갈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팬으로서 그가 무슨일을 하던 '우리가 뭐 그렇지' 라는 그의 유행어 한마디면 나는 그를 이해할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그의 오랜 팬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변명아닌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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