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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한 글/오마이뉴스

[리뷰] <나는 가수다>, '김건모'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날 TV앞에 연기자들의 과장된 몸짓과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대신, 음악과 노래가 흐른다. 그것도 심야의 음악 전문프로그램이 아닌, 가장 프라임타임이라 할 수 있는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흐른다. 특히 한동안 저조한 시청률에 맥을 못 췄던 MBC가 가장 주목할 만한 공격력을 보여준다. 엠넷의 <슈퍼스타 K>에 맞서는 <위대한 탄생>과 '일밤'의 <나는 가수다>가 그것. 특히 <위대한 탄생>은 방송 전부터 이미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포맷을 가지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일밤>의 새 코너 '나는 가수다'는 여러모로 생각하기 어려운 포맷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방법론은 꽤 단순하다. '음악'을 버라이어티에 끌고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커다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음악이 보통 음악이 아니라 음악성을 보증 받은 실력파 가수들이 하는 노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수 7명이라는 한계를 두고 그들에게 미션을 부여해 경연이 끝날 때마다 계속해서 한 명의 탈락자를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가수가 메우며 7명은 끝까지 경쟁한다. 위험하지만 재밌고, 재밌으면서도 위험하다. 벼랑 끝에 밀려 자존심의 상처만 입은 채 잔뜩 웅크려있던 늙은 사자 '일밤'을 살리기 위한 김영희 PD의 승부수는 그처럼 강력했다.



한국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 

  
일밤 <나는 가수다>가 가지는 최대의 강점은 한국대중음악, 즉 k-pop에 갖는 진지한 접근이다.
ⓒ mbc
나는 가수다

 

이처럼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의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미덕을 가진다. 그중에서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이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신설될 때만 하더라도 아이돌 출신들과 10대들이 프로그램을 이끌 것이라는 평가는 첫 회 방송이후 상당부분 무너졌다. 김건모, 이소라, 김범수, 백지영, 박정현, 윤도현, 정엽의 라인업은 국내 가요시장의 실력파의 기준이 소울과 알앤비 쪽에 편중된 느낌이 있다는 느낌도 있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장르의 다양성에 상당히 신경 썼다는 느낌도 충분히 전해지는 라인업이다. 또한 3회 방송분에 1등을 한 뮤지션이, 록커 윤도현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방송 포맷의 중요한 포인트인 '미션 수행'에 초점을 맞추면 이러한 다양성은 더욱 강화된다. 이들이 7명의 가수들에게 부여한 미션들은 자문위원단이 선정한 곡들이 중심이 된다. 특히 2회 방송때 부여된 첫 번째 미션의 주제는 '1985~1989년에 발표된 한국대중음악 명곡 30곡' 중에 하나를 골라 각자의 스타일대로 편곡을 하는 방식임이 발표됐다. 이는 한국대중음악 역사 전체를 다양한 장르를 통해 되짚어 보고, 이제는 뿌리를 통한 내실을 다져야할 K-POP의 방향성에도 상당부분 부합한다. 특히나 이러한 방향성은, 그동안 걸 그룹과 아이돌 팝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한다는 계산도 세련되게 깔려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서바이벌'에 있어 탈락자를 뽑는 결정적인 키를 쥔 청중평가단이 어느 특정세대나 성별에 집중돼있지 않고,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한 점이나, 자칫 지루하게 빠질 수 있는 프로그램 포맷에서 윤활유역할을 담당하는 개그맨들의 매니저 수행도 긍정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가수다>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다. 이제까지 예능프로그램에서 음악이 사용되어진 사례는 굉장히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용'에 측면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는 한국대중음악, 즉 K-POP이 프로그램의 중심이자 전부이며, 무기다.

그렇기에 서바이벌이라는 다소 위험한 상업적 요소를 안고 가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시청자들의 이목은 우선 음악 그 자체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수들이 경연할 때 들리는 사운드 자체에 상당히 귀가 꽂힌다.

결국 포인트는 한국대중음악과 예능프로그램의 상생, 그리고 시청자의 만족을 동시에 잡고 가는 것이다.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언제나 하나의 흥미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음악이라는 식재료는, 서바이벌이라 불리는 강한 중독성을 가진 소스를 붓고 손님 앞에 나왔다. 손님도 만족하고 주방장도 만족하며, 식당도 만족할 가장 최상의 상생방법은 결국 이처럼 <나는 가수다>가 한국대중음악의 진지한 접근법을 끝까지 놓치지 않음에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러한 접근법은 합격점이라 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너무나 매운 '서바이벌'이라는 소스

  
한국대중음악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12집 가수의 노래를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듣는 것은 분명한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서바이벌 제도의 보완을 사전에 마련하지 못한 제작진의 과욕에 있다.
ⓒ 미디어라인
김건모

 

하지만 3회 방송에서 첫 번째 탈락자의 이름에서 김건모의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하면서 서바이벌이라는 음식의 소스가 너무 맵다는 것이 증명됐다. 대한민국 최다 음반 판매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정규 12집 까지 발매한 최고의 가수를 고작 2회 방송분만을 보고 잃어버리는 것은 애초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훌륭한 음악이란 식재료에, 너무나 자극적인 소스를 부어버린 결과다.

따라서 이 후에 서바이벌이라는 소스가 훌륭한 음식을 덮어버릴 공산을 남겼다는 점은 아쉽다. 기획 초기, 죽어가는 '일밤'을 살려야 하기 위해서 제작진이 강력한 무언가를 준비해야했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보완책을 미리 공지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다가 이 프로그램의 최대의 미덕인 한국대중음악과 주말버라이어티의 상생조차 묻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도전 기회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가벼운 발성하나로 몇 백가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를 지닌 대한민국 '김건모'라는 가수를 계속해서 주말 버라이어티를 통해 최상의 공연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포인트는 그것이다. 그리고 포인트를 놓쳐버린 지금, 시청자와 출연자, 그리고 평가단 모두가 납득할만한 보완책을 내는 것은 제작진이 내놓아야 할 무거운 숙제다.

출처 : <나는 가수다>, '김건모'는 잘못없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