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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한 글/오마이뉴스

[주장] <나가수> 출연 가수들이 왜 욕을 먹어야 하나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의 논쟁이 식을 줄 모른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재도전'의 기회를 생성해낸, 즉 '규칙'을 어긴 김건모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 혹자는 이 문제를 사회 전반에 따른 부조리와 연관지어 비난하기 바쁘다.

과연 그럴까. <나는 가수다>의 김건모가 재도전 기회를 번복하고, 담당 PD는 교체되며, 출연가수들이 집단 탈퇴의사를 비치면서 확장되는 파행이 그 '규칙'에만 연관 있을까.

 

MBC의 '통보된 룰'에 끌려간 '가수'들

  
방송 도중에 'pd교체'라는 내홍을 겪고 있는 <나는 가수다>
ⓒ mbc
나는 가수다

물론 그러한 면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규칙은 규칙이다. 따라서 재도전 기회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촌극이 일어나기 전에, 탈락자 본인이 깨끗하게 물러났으면 될 일이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일리 있다. 그러므로 그 시청자들의 분노 역시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에 관한 논란의 초점은 당연히 '제작진'에 맞춰야 한다. <나는 가수다>의 규칙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출연자, 시청자, 제작진 모두가 합의하여 도출한 규칙이 아닌, 제작진이 가수와 시청자에게 '통보한 규칙'이다. 물론 그 규칙에 합의하여 출연을 결정한 가수들 역시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오로지 아이돌 팝만이 득세하며 외형적인 성장을 이루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 중심에 선 그 출연 가수들의 처지를 말이다. 그들은 잊힌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을 이끌 책임이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실력 있고 연륜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러한 대형 방송사가 '통보한 규칙'에 합의하기까지 겪어야 했을 고뇌의 뒷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소비되는 웃음만이 남아있는 주말 버라이어티에 '가수'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 그 달콤한 사탕 안에 사실 쓰디 쓴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나쁜 사회'의 구성원이라 비판할 수 있는가. 이 나쁜 사회가 된 원인에, 한국 대중음악을 등한 시 하고 불법음원을 마구잡이로 다운 받으면서도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류가 불고 있다는 단편적인 소식에는 일희하던 누군가의 잘못은 왜 나오지 않는가. 왜 김건모가, 이소라가, 윤도현이, 김범수가, 백지영이, 정엽이, 박정현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가에 대한 문제는 왜 말하지 않는가.

따라서 가수들이 왜 그딴 프로그램에 나가느냐며 욕하기 전에, 어째서 가수들이 그곳에 나가야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처럼 1등을 하면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요, 가수가 되는 꿈을 이루는 것도 아니요, 아마추어도 아닌 그들이 왜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야 했는가. 자신들에게는 전부나 다름없는 '음악'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대중 앞에 발가벗겨져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보고도 '나쁜 사회'라 욕할 수 있으면 욕하라.

필자가 보기에 제작진은 첫째로 자승자박을 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여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며, 두 번째는 가수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한다. 그들 덕분에 20년 동안 노래만 부르던 '가수'는 하루 만에 부조리한 정치인보다 더 욕을 먹는 사람이 됐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한 감성으로 노래를 한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아티스트 이소라는 사회를 모르고 규칙을 모르는 철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음악'을, '예술'을 존경하지 않는 사회

이제 처지를 바꿔서 가정을 한번 해보자. 어느 한 방송사에서 <나는 배우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치자. 국민배우라 불리는 안성기, 송강호, 최민식, 장동건, 전도연, 박중훈, 설경구 같은 배우들을 모아놓고 각자 10분마다 1인극을 관객 앞에서 펼친다. 연극을 보러 온 500명의 평가단이 그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꼴찌는 탈락한다.

아니면 기성작가 7명을 모으자. <나는 작가다>를 만들어 놓았다. 누가 좋을까. 당장 생각나는 이외수, 김수현, 이문열, 황석영, 공지영, 신경숙, 노희경을 모아놓고 2주 만에 단편소설 하나 짓게 하자. 그리고 제일 재미없게 지은 작가 한 명을 2주에 한 명씩 탈락하자. 어떤가. 재미있을 것 같은가.

이처럼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상실된 현재의 대한민국이 참으로 서글프다. 그중에 최초의 희생이 '음악'이 되었다는 것이 더 서글프다. 대중음악이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접근성이 좋은 예술이긴 하지만, 기성가수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제작진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작금을 보는 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 포맷이 좋았다. 프로그램이 가지는 목적성도 좋았고, 2회까지 시청률도 끌어올렸다.

그러나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서바이벌'이란 제작진의 과욕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거기 출연한 가수들까지 공분하는 대중들에 의해 가수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이제 PD를 바꾸고 새롭게 시작할 <나는 가수다>에서는 이러한 무리수는 과감히 제거해 주길 바란다. 인정받지 못하는 대중예술이 팽배한 사회야말로 정말 '나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