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물고기'. 내가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은, 예전 네이버 '이 주의 국내앨범' 섹션에서 선정위원을 맡을 때였다. 그때 놀랐던 것은 이 척박한 대한민국 인디음악시장에서도 쏟아지는 수많은 앨범의 숫자였고, 그 다음으로 또 놀랐던 것은 그 수많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잘 보이지 않는 음악쟁이들의 놀라운 능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NY물고기의 2집 <진실의 숲(Forest Of Truth)>을 접했던 것이 벌써 2년 전이다. 그런 그가 2007년 '뉴욕물고기'란 이름으로 1집 <피쉬, 아웃 프롬 워터(Fish, Out From Water)>로 처음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 시킨 이후, 이번에 3집 <애러건트 그래피티(Arrogant Graffiti)>으로 다시 돌아왔다.
설렌다. 누군가의 음반이 이러한 설렘으로 다가온 것은 단언컨대, 정말 오랜만이다.
NY물고기의 3집 [Arrogant Graffiti]
그가 직접 그렸다는 삭막한 느낌의 앨범 커버와 그림들을 보고는, 혹자는 음악까지 난해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의 음악은 기실 다분히 대중적이다. 외로움을 서정적으로 풀어놓은 멜로디와 단출하지만 탄탄한 악기의 구성들은 분명 듣는 이를 잡아끄는 '훅'이 있다. 다만, 그 훅이 우리가 TV에서 흔히 듣는 반복적인 기계음이나 최면 같은 전자음이 아니라, 편안하고도 아늑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운드는 언젠가부터 인디씬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레이블 <파스텔 뮤직>에서 발매되는 앨범들이나,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루시드 폴', '옥상달빛', '재주소년', '플라스틱 피플'까지도 억지로 연결하자면 안 될 것도 없다. 다만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과는 달리 NY물고기는 듣는 이들을 '위로'하지 않는다. 즉, 그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에서 최근에 흔하디흔한 '오늘도 수고했어요'나, '내일도 힘내요'라는 메시지는 찾기 힘들다. 그는 자기 이야기만 한다. 충분히 훌륭한 기타리스트로서의 넘치지 않는 자신의 연주 안에서, NY물고기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만 밖을 본다. 한 마디도 편협하다. 그러나 그 편협함을 상대방이 납득하는 점이라는 것에서, 그의 음악에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80년대 조동익, 이병우로 구성됐던 '어떤 날'에서 들었던 기타의 관조적인 멜로디 안에, 닉 드레이크(Nick Drake)가 가진 음습함과의 만남. 혹은 '패닉'시절 이적이 노래했던 골방에서의 판타지와, 세련되게 재편된 데이브 반 론크(Dave Van Ronk)의 만남. 혹은 알렉시 머독(Alexi Murdoch)의 감성과 토미 엠마뉴엘(Tommy Emmanuel)의 스타일.
전작에서부터 들려줬던 이러한 일련의 장르의 파괴와 다양함은, 이번 음반에서도 남들은 쉽게 눈치 채지 못하지만 잘 섞일 것 같은 다른 색깔의 물감들을 정확히 선택해서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해낸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이기적인 뮤지션에 청자들이 납득하고 마는 결정적인 요소다,
그런 측면에서 타이틀곡인 '여기에'와 연주곡인 '오만한 낙서'는 반드시 들어봐야 할 곡이다. 최근엔 음반을 굳이 사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서 노래 한곡쯤은 금방 들을 수 있으니, 노래를 권하는 것이 딱히 부담스럽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이번 3집 <애러건트 그래피티(Arrogant Graffiti)>가 전작인 <진실의 숲(Forest Of Truth)>을 뛰어넘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장르가 결합하여 좀 더 다양한 소리를 들려줬던 그의 2집 <진실의 숲(Forest Of Truth)>은 이번 신보보다 뛰어나다.
실제로 생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소중한 내 친구가, NY물고기의 음반 한 장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이번 3집보다 그의 2집을 내 CD장에서 꺼낼지도 모른다. 그것은 최소화 시킨 악기의 구성과, 튀는 트랙 없이 거침없이 흘러가는 곡의 퀼리티와 같은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사운드의 통일성, 혹은 안정감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무엇이 더 집중할 수 있는 음반인가를 묻는다면, 이번 신보를 권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그가 전작과 구분되는 그가 의도한 진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나는 이 음반을 CD플레이어에 넣자마자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꽤 오랜만에 생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