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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Vince Guaraldi Trio -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

[  Vince Guaraldi ]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때는 주말 오전에 티비에선 만화가 꽤나 긴 시간 동안 방영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추운 겨울 아침.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주말은 언제나 외가댁에서 보내야 했던 그 시절에 할아버지 할머니 보다 먼저 깨어난 어느 하얀 아침에, 낡은 티비에서 비치던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의 크리스마스 날 풍경과 함께 깔리던 캐롤은, 꽤나 단편적이지만 꽤나 뚜렷하게 나에게 각인이 되어있다.

그리고 한참 후에 2000년 2월의 어느 날. 찰스 슐츠의 마지막 임종기사를 읽었을 때도 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피너츠에 대한 기사를 이래저래 검색하다가 피너츠 DVD 박셋의 가격이 엄청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그 유년의 기억을 보고싶다 라는 꽤나 단순한 생각으로 구매 버튼을 누른 뒤, 아주 잠시나마 그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죽음에 대해 국내의 한 평론가가 '그의 죽음은 결국 이제 더 이상 빨강머리 소녀와 찰리 브라운의 사랑얘기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는 문장을 읽었을때, 그제서야 난 제대로 실감을 했다. 아.. 찰리 브라운의 유년은 이제 끝이 났구나.. 라고.


[  A Charlie Brown Christmas ]



뭐, 그런 의미에서 내가 최초로 들은 재즈 앨범은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LP판이었고, 최초로 구입한 재즈 앨범은 데이브 그루신의 <Two for the Road>의 카세트 테이프 였으며, 최초로 귀기울여 들은 재즈곡은 빈스 과랄디의 'Christmas Time Is Here' 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어린 기억이라 그때의 감상을 세세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내가 지금 좋은 음악을 들었을때 느끼는 감동과 그닥 차이가 없을 듯한 감동을 그때도 느꼈다는 점이다. 아, 물론 그 음악이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음악 이었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그 O.S.T 음반을 구입한건 그때로 부터 십여년이 지난 일이긴 했다만.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거의 다 들어봤을 그의 명반인 <A Boy Named Charlie Brown>이나, <Black Orpheus>와 비교한다면 이래저래 저평가 받을지도 모를 이 크리스마스 앨범은 ㅡ하지만 참고로 언급한 세앨범은 amg에서 모두 별 다섯개 만점을 먹었다ㅡ, 그러나 나에게는 이성적인 감상보다는 감성적인 감상으로 앞선 두 앨범보다 더 깊은 맛을 제공한다. 그것에 본질은 역시 추억을 상기한다는 꽤나 흔하고도 값싼 감상이긴 하다만, 그 만큼이나 쉬이 고개 돌리지 못한다. 유려하고도 여유로운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그의 피아노는 확실히 추억의 냄새가 난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그나저나 최근 데이빗 베누와에게 약간 밀린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역시 빈스 과랄디 얘기를 할때는 피너츠 얘기가 확실히 더 많이 나오게 된다.. 여러가지 의미로 왠지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