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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 [Porgy & Bess (1958)]

[ George Gershwin ]



조지거쉰의 음악은 다분히 미국적(美國的)이다. 이 '미국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음악에서 우리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성향'이라는 것을 벗어난 다분히 복잡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유럽에서 떨어져 나간 미국이란 국가는, 아다시피 그들만의 신대륙에서 상당히 독자적인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태동 당시 미국문화의 위치라는 것이 매우 애매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애매한 위치야 말로 '미국적'인 것의 큰 모태가 되었고, 이러한 혼재가 유럽 문화보다 뒤쳐진다는 개념보다는 '섞여있음' 그 자체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축하여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놀랍다 할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배타적이지 않은 관대한 수용능력이야 말로 오늘날 미국을 초 강대국으로 이끈 커다란 원동력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하면, '미국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20세기를 지배했다.

거쉰은 사실 순수음악에 대한 지식이 그다지 깊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굉장히 '가볍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데, 그러나 이러한 감성은 과거 모차르트의 음악과 같은 즐겁고 고상한 느낌의 가벼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가벼움이다. 결국 그의 음악은 혼합된 미국적 문화 라는 개념을 꺼내들지 않으면 기존의 클래식적 음악 사관으로는 꽤나 설명이 어렵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일컬어 재즈 오페라니, 재즈 클래식이나 하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장르가 조금은 억지스럽게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거쉰의 작품인 <Porgy & Bess>는 나에게는 두장의 CD로 남겨져 있는데, 하나는 재즈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만한 필청앨범 중에 하나인 엘라와 루이의 이름으로 1957년 녹음된 <Porgy & Bess>이고, 다른 하나는 데카에서 발매하고 안탈 도라티와 디트로이트 필이 1982년에 녹음하여 발매한 24분짜리 편집 본이다. 전자는 그렇더라도 후자의 경우에는 그 연주길이에서 알 수 있듯이 로버트 베셀 베네트라는 다분히 상업적인 편곡자가 손 봐놓은 버전이라 그다지 만족스러운 감상을 이끌어 내진 못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경우이겠지만, 연주시작 59초 부분에서 상당히 튀는 음이 나오는 것이 매우 불만스럽다..-

그에 비해 루이와 엘라가 녹음된 58년 <Porgy & Bess>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 당시 엘라의 목소리는 단순히 재즈보컬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당히 풍부한 성량을 여기저기에 자랑하고 있었고 포기의 역을 담당한 루이의 보컬도 언제나 그랬듯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외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흑인이라는 점과 그 음악적 선율 역시 그들의 영가에서 차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노만 그랜츠가 꽤나 비지니스적 마인드로 야심차게 앨범을 기획한 만큼 빅밴드의 연주 역시 상당히 수준급이라는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거쉰의 이 미국적인 작품은 상업적으로 편곡된 디트로이트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는 그들이 연주하고 그들이 노래한 엘라와 루이의 음반을 듣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편협한 나의 사고방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쉰의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불멸의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Summer Time'이겠지만, 내가 제일 애착을 가지는 곡은 'Oh, Lawd, I'm on My Way!'라는 앨범의 마지막 곡이다. 영화나 혹은 뮤지컬로 이 작품을 감상한 사람은 알겠지만, 천신만고 끝에 살인혐의를 벗고 집으로 돌아온 포기가 베스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다가, 그녀를 찾아나서기 위해 길을 떠나며 부르는 이 곡은 다분히 비극적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다분히 희망적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재즈적'이다.  

까만 얼굴과 하얀 얼굴의 조화로운 상성. 그가 추구한 미국적 음악에는 분명 그것이 녹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