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즈 에세이

Archie Shepp - [The Cry of My People (1972)]

[  Archie Shepp ]




재즈 색소포니스트 아치 솁을 어느 한 범주로 설명하긴 어렵다. 물론 그를 제외하고라도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재즈가 가지는 본질적 다양성 만큼이나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그 위대한 마일즈 데이비스와 오넷콜맨의 이름을 상기해 보라. 그리고 재즈라는 음악이 가지는 포함의 범위를 넘어선 창조의 놀라움을 감탄해보라.

내가 아치 솁의 앨범 65년작 <Fire Music>을 처음 들었을때 느낀 감흥은 프리재즈의 그것이었다. 아다시피 당시에 재즈의 패러다임은 분명 그것이었고, 아치 솁 역시 본인을 그것에 묻히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앨범에서 아치 솁이 불어보이는 톤(tone)은 그것에 꽤나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그 톤 들로써 듀크 엘링턴과 탐 조빔의 곡을 무참하게 짓이겨서 재해석 해놓은 트랙들은 초기 아치 솁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후 아치 솁의 음악행보를 이해하는데 이러한 그의 출발은 꽤나 절대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오늘 얘기할 72년 작 <The Cry of My People> 이 앨범은, 앞서말한 마일즈 데이비스와 오넷콜맨의 그것과는 다른 측면의 놀라움을 제시한다. 그는 차용만 당해왔던 검은음악이 서양의 하얀음악의 그것을 차용하는 역설적 창조를 보여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음악의 주류적 시점에서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얘기할때, 우리는 단번에 몇몇 재즈 장르의 특별한 시도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아울러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트럼펫을 물고있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표정이나 존 콜트레인의 얼굴이 같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치 솁은 그들과는 꽤 다른 노선의 길을 택한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서 그가 몸 담고 있는 음악이란 소리 전체에 범주를 통일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창조의 그것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 이전의 창조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치 솁은 그들에 비해 훨씬 더 본질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오넷콜맨이나 존 콜트레인이 말하는 영원과는 다른 의미로, 앞서 말했듯 아치 솁이 가지고 있던, 혹은 인식하던 본연의 음악을 말한다. 그것이 흑인들 전체의 음악일 수도 있고, 재즈의 전체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치 솁은 그들보다 훨씬 현실적인 통합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굳이 끌어들이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찰스 밍거스나 듀크 엘링턴과는 또 다르다. 가스펠, 빅밴드, 스윙, 하드밥, 팝, 클래식의 곡 형식이 매우 절묘하게 섞여있는 음악. 난 이 음악 ㅡ더 정확하게는 앨범ㅡ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아치 솁과 칼 머시의 위대한 업적에 공허한 박수말 쳐댈 뿐이다.

이야기가 좀 복잡할까..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너무 찬양모드가 아니었나 싶어 살짝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분들은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주시고,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놓고 씹어주시길 바라며, 몰랐던 분들은 이 앨범을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아치 솁이 하려했던 통합과 정리가 난무하는 이 복잡한 명반을 나와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그거니까.



Archie Shepp - Sax(tenor, soprano)
with arrangements by Cal Massey and featuring various perso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