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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Enrico Pieranunzi - [Dream Dance (2009)]

[ Enrico Pieranunzi ]



알다시피 엔리코 피에라눈지(enrico pieranunzi), 마크 존슨(marc johnson), 조이 배런(joey baron)의 트리오 라인업은, 그들의 일련의 작업을 통해 현존하는 피아노 트리오 라인업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튼튼한 기반을 마련했다. 케니 휠러(kenny wheeler)가 들어왔던 <As Never Before>나 조이 배런이 배제된 전작 <Yellow & Blue Suites>, 혹은 피에라눈지의 스카를라티 연주의 경우 그 자체로도 매우 좋은 작품성을 발현했지만, 어떤이에겐 외려 이들 트리오 라인업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대시키기게 만들어 버린 측면이 강했다. 아울러 케니 휠러와의 'as never before'와 이번 신보의 트리오 구성의 동명트랙을 듣고 있노라면 그러한 일련의 의견은 어느덧 공통의 확신으로 변모한다. 
 

사실 빌 에반스의 '리버사이드 3부작'의 망령에서 벌써 50여년 이라는 세월동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금의 피아노 트리오 씬에서, 아웃 플레이를 즐겨하는 프리재즈 연주자외에 연주자들이 그 망령의 탈출구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특히 피에라눈지 피아노에서 자주 언급되는 서정적 피아니즘이나 리리시즘. 그리고 아름답고도 스탠다드한 접근은 재즈 피아노에 있어 분명 존재하는 빌 에반스와 피에라눈지의 교집합이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앞서 말했듯이 비단 피에라눈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빌 에반스의 등장은 원래가 청자들에겐 축복이었고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에겐 족쇄와도 같은 존재 였으니까.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개념으로 단순히 피에라눈지의 피아노와 그의 트리오를 규정짓기엔 뭔가 한계가 있다. 물론 트리오 외에 앞서 말한 케니 휠러나 과거 쳇 베이커와 같은 트럼펫 쿼텟 구성이나 솔로와 같은 외에 구성에 있어서 보여왔던 변화의 모습마저도 그러한 망령과 그저 동떨어져 말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음 공간과 공간 사이에 공백없는 쉼. 그리고 그 쉼 이후에 바닷바람처럼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아르페지오의 전개와 기분좋은 리듬섹션간의 긴장감은 역시 그 전체를 묶어서 규정하기에도 상당히 무리가 있다.  요는 결국 그의 뛰어난 '구성력'이다.

이번 2009년 신보 <Dream Dance>에서는 이러한 그들 창조성의 원천기술인 구성적인 인터플레이가 더 나아갈 진보의 얘기도 살짝 곁들이고 있는데, 특히 초반 1, 2번 트랙은 과거 평이한 임프로비제이션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돌았던 그가, 트랙간의 공백있는 녹음으로 인해 주제에 대한 평은 좀 갈리긴 했지만 <Live In Japan>으로 그들 의견을 상쇄시켜 버린 전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실험적이며 도전적이다. 아울러 멜로디스트로서의 마크 존슨의 실체, 이젠 완전히 녹아버린 조이 배런의 드럼도 여러 트랙에서 재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모든것을 감싸고 돌아가는 피에라눈지의 피아노는, 최근 너무 정력적으로 발매되고 있다는 느낌의 그의 음반활동에 제동을 걸레야 걸 수 없게 만든다. 

이쯤되면 재즈 피아노 트리오에서 이제 발전의 종말을 얘기해야 하는 작금의 상태에서 그의 행보가 꽤나 가치있게 들리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상당히 '첨단'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