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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Kenny Drew - [Recollections (1989)]

[ Kenny Drew ]



때때로 나는 재즈 아티스트들 나이와 관련한 일종의 이미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 편견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되었기에, 사실 편견이라는 단어선택이 적절한지는 좀 걱정스럽지만 내가 그러한 오해를 가지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예컨데 길 에반스나 케니 드류다. 길 에반스의 경우 아다시피 꽤나 오랜시간 재즈씬에서 활약했고 말년의 그의 실험적인 빅밴드 구성은 '철없는 할아버지'의 그것의 이미지가 꽤나 강력하게 남아있어, 그를 떠올릴때면 언제나 백발이 성성한 백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시기에 그와 같이 활약했던 마일즈를 떠올릴때면 날카로운 눈매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튼튼한 젊은이가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이쯤되면 재즈역사 100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케니 드류같은 경우는 좀 다른데, 그의 피아노는 왠지 '젊음'의 냄새가 난다. 그다지 장수한 편은 아니지만 90년대까지 활약하셨고, 누구나 알만한 그의 대표적인 음반인 <Recollections>의 표지를 보면 꽤나 장인의 풍모가 느껴지는 외모를 자랑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는 언제나 '어리다' 라는 이미지다. 특히 사이드맨으로 활약할 시기에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다가 그의 출생연도가 1920년대이고, 61년도 케니 도햄과 같이 협연한 앨범 라이너 노트를 읽고 이 둘은 당시 비슷한 연배 였다는 것을 알아채고 난 다음에 내가 겪은 조그마한 충격은 지금 생각해도 좀 부끄럽다.

또한 케니 드류의 나의 이러한 편견은 과거 60년대 모던 시대의 그의 활약상에 대한 디스코그라피와 무관하지 않다. 그 황금의 시대에 케니 드류의 리더작은 분명 '실종'되어있다. 블루노트에서 발매한 <Undercurrent> 이후 덴마크로 날아가 스티플체이스로 이전할때 까지의 케니 드류는 분명 부재되어 있는 피아니스트로 나에게 남아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그와 활약했던 미국의 재즈아티스트들이 보여준 강력한 인상에 포스트 모던이 아니었던 점도 그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굳게 해준 요소였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느끼는 오스카 피터슨과 그의 차이점이기도 한데, 이 둘은 어딘가 닮아있는 듯 하면서도 분명 어긋나 있다. 상당히 잔인하게 말하자면 60년대의 이 둘의 활약상의 차이가 결국 한명은 위대한 아티스트로 남게했고 다른 한명은 이래저래 고착된 이미지의 피아니스트로 남게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이 두분을 묶여진 음악적 스타일로 전제해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매우 무지한 발상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케니 드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여기에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니 드류의 파이노는 언제나 깔끔하고 늘 생동감이 넘친다. 80년대 발매된 오스카 피터슨의 트리오 리더작들과 그의 트리오 리더작들은 표면적으로 강하게 스윙하며 강하게 어필한다. '이것이 이 두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케니 드류의 이러한 피아노는 어떠한 변환과정 없이 꾸준히 그러한 스타일과 활약상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때로는 '발전'을 말하는 오스카 피터슨의 차이점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케니 드류가 웅장한 카리스마의 스타인웨이를 오스카 피터슨처럼 익숙한 장난감 마냥 쉬지않고 다루는 소리를 듣고있노라면, 그 '유지'와 '발전'의 차등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고 말아버린다.
 
이쯤되면 할수만 있다면 닐스 헤닝 페데르센에게 이 두분의 차이를 한번 여쭤보고 싶다. 어쩐지 굉장한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아. 물론 지금 세분은 저 닿지않는 나라에서 피아노 두대와 베이스 한대라는 독특한 트리오를 구성해 연주회를 돌아다니시느라 바쁘시다는 풍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