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첫 번째로 이 앨범은 이승환 만의 독특하고도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체계적으로 담겨가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시간을 뛰어넘어 이 이후에 등장하는 세대가 수용했을 때도 전혀 거부감을 느낄 수 없을 세련된 음악기술의 진보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4집 이전에 이승환의 음반의 면면을 살펴보면, 89년 1집 <B.C 603> 이후 3집 <My Story>까지의 이승환의 음악은 분명 4집 <Human>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것의 이유를 대중음악의 어느 한 시대를 구축했던 오태호, 정석원과의 만남 이후 새롭게 떠오르는 김동률, 유희열과의 협연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핵심적인 사항은 이승환 본인이 개척해 나간 '한계의 도전'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게 더 맞는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모험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승환의 음악적 스타일은 이 4집 <Human>을 근간으로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고, 생산과 파괴도 반복했다. 이 '근간'이라는 표현은 시사하는 바가 꽤 많은데, 다시 말해 <Human>은 이승환의 앨범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앨범인 동시에 그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이승환의 음악적 스타일을 묶어 버리는 역할도 담당하는 앨범도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묘한 아이러니는 사실 이승환만이 겪는 일은 아니고, 외려 그렇게 사라져간 뮤지션들에 비하면 이승환은 훨씬 성공적인 음악적 표현을 구축한 뮤지션이긴 하지만, 4집 <Human>의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는 5집 <Cycle>이후 그가 찾으려 했던 음악적 방향성은 과거에 비해 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물론 그것이 이승환 본인이 이후에 겪었던 이런저런 개인적인 루머에 의한 작용이라는 점도 배제할 수 없고, 아울러 그 이후에 발매되었던 그의 음반의 완성도는 단 한 번의 배신 없이 언제나 훌륭했지만, 팬들은 좋든 싫든 그리고 본인이 자각하든, 하지 않던 언제나 그의 음악을 <Human>과의 비교선상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승환본인과 그의 팬들 역시 암묵적으로 수긍하고 있는 점으로, 나중에 이승환이 발라드적 감상을 벗어버리고 '록커'로서의 능력을 뽐내려 할때 팬들이 느꼈던 묘한 이질감의 원인은 결국 이 <Human>의 대성공 아래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까지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천일동안'은 너무 강했고 <Human>의 음악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이승환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재기발랄한 가사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악기들의 조화. 다양한 시도 속에 휘감는 멜로디와 특유의 깨끗한 창법으로 장르의 이질감을 상쇄시켜 버리는 매끄러운 녹음. 더 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곡 콘셉트에 맞는 알맞은 연주. 그리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불멸의 발라드 넘버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에서 이승환은 본인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방에 쏟아냈다. 즉, 이승환의 음악은 이 음반 한장으로 사실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속에는 그의 메탈키드의 대한 열정을 담은 9분짜리 대곡 '너의 나라'가 포함되어 있어 그 완성도를 뒷받침하지만, 팬들은 '천일동안‘의 감상에 파묻혀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이 <Human>은 그렇게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앨범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 고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구축하고 발전시켜 애쓴 그의 노고에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다. 원래 세상에서 가장 쌓기 힘든 업적은, 본인이 과거 이루어놓은 업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이승환처럼 '굴복'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싸워 왔다는 점은 그런의미에서 더욱 칭송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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