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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윤상 - [Cliche (2000)]




최근 <mo:tet> 앨범을 발매한 윤상은, 마이 스페이스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에 대한 매너리즘을 토로한 바 있다. 그 토로는 뮤지션의 음악적 클리셰와 관련한 꽤나 근원적인 고뇌의 이야기로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윤상의 음악에 대해 한번 훑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우리들이 흔히 인지하고 있는 히트한 윤상 사운드의 근간은, 사실 70-80년대 뉴웨이브를 기본으로한 신스팝과 상당히 맞닿아있다. 하지만 그런 러프한 본래의 신스팝보다 윤상의 음악은 한층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특유의 매끄러운 편곡과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박창학의 한편의 시와 같은 깊고도 아름다운 가사와 그것을 읊어내는 왠지 모를 염세적인 윤상의 창법은 그토록 놀라운 결합을 이루어냈다는 점이 그것이다. 결국 그러한 윤상 사운드는 국내의 수많은 '윤상 마니아'를 양산해 내기에 이르렀고, 윤상의 이러한 음악적 감각은 당대를 호령했던 강수지, 변진섭의 작곡자로, 그리고 자신의 정규 앨범의 엄청난 히트로 발현되어 대중음악사의 한 시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은 필연적인 '정체'로 귀결하고 마는데, 그러한 점을 타파하고자 그가 96년 신해철과 함께 발매던 <No Dance>의 테크노 사운드는 그것을 반증한다.
결국 그는 뉴웨이브, 신스팝, 테크노를 거쳐 IDM에 이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걸 보면 그의 최근 앨범 <mo:tet>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며 그가 토로했을 매너리즘의 정체에 대해 대강의 유추가 가능하다.

물론 윤상의 음악을 이처럼 일렉트로니카라는 한 장르에 한정해서 이해하기에는 굉장한 무리가 있다. 실제로 많은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곡들은, 그의 데뷔곡이기도 한 '이별의 그늘'이나 '가려진 시간 사이로'와 같은 감수성 충만한 발라드 넘버였고, 그가 이제까지 대중에게 보여준 음악은 대체로 고집스런 장르를 구축하는 아티스트의 모습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는 모습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오늘 얘기할 3집 <Cliche>는 이러한 매너리즘과 발전 사이에서 그가 발견한 또 다른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에 발매된 윤상의 3집 <Cliche>은 그 이전부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다. 그의 전작 싱글앨범들인 <Renacimiento>의 월드 뮤직적 감성. 그리고 윤상 사운드의 결집인 <Insensible> 합쳐지면 과연 어떠한 음악이 나올까 하는 근원적인 기대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가 발매이전 꾸준히 언급하던 피아졸라를 위시한 라틴음악의 선곡 덕분에 제이미 윌렌스키의 이름을 각인하게 된 시점도 그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의 절친한 동료인 토이 유희열의 5집인 <Fermata> 역시 그 연장선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파급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외려 '오버'해서 반응하는 곳곳에 설레발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이러한 변화와 시도속에 상당히 균형 잡힌 사운드를 도출하는데, 특히나 이 음반의 6번 트랙인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너에게'의 반도네온의 노골적인 시도나, 시사이 밴드와 함께한 '바람에게'. 현악과 전자음의 'Back To The Real Life'. 아울러 대중들이 바라는 감성인 '사랑이란'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각각의 장르 끝에서 나타내는 최상의 조합이었다. 결국 월드뮤직이 일렉트로니카를 잡아먹지 않았다. 물론 일렉트로니카가 월드뮤직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았다. 이 둘은 서로 상생하며 윤상 사운드란 이름으로, 최소한 음악을 듣는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통합된 것이다.

물론 때로는 이 두 가지가 '녹아내어졌다' 라기 보다는, '독립되어 발현되었다' 는 비판도 가능하며, 아울러
<Cliche>의 속뜻인 '진부한 표현'을 빌어 그 스스로 그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실제로 음악 곳곳에 닿고싶은 그의 이상과 현실에서 타협점을 찾은듯한 소리의 발견은 심심찮게 노출된다 ―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어떠한 모습이에서건 이처럼 윤상 사운드는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윤상이 고민하게 되는 건전한 매너리즘의 근거이며, 윤상 마니아들이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한 동시에 그의 후배들이 <Song Book>이란 이름으로 그를 기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3집 <Cliche>는 그의 음반가운데 꽤나 기념비 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런 매너리즘에 끝에 홀연히 떠나 <mo:tet>을 들고 나온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그가 찾고 있는 그 '소리의 탐험'이 언제나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